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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상세보기
    상서로운 빛을 품은 천년고찰신라 661년에 당대 최고의 고승이었던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이다. 북한산 원효암에서 수행 중 상서로운 기운을 따라 산을 내려와 인연도량인 약사여래를 모시고 절 이름을 ‘상서로운 빛이 일어난 곳이라 앞으로 많은 성인들이 배출될 것이다’라며 흥성암이라 하였다. 18세기 조선 21대 왕인 영조가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에 행차하는 길에 이곳에 들러 묵었으며 흥국사로 개칭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왕실의 원찰로 삼았다. 극락구품도와 괘불,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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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운사  상세보기
    ‘상서(祥瑞)로운 구름 속의 사찰’이란 이름의 상운사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로 원효봉, 영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등 수려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친 곳에 세워져 있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상운사는 신라시대에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북한산에서 잠시 수행을 할 때 창건할 때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이후 상운사는 승군이 주둔하는 사찰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 현재 상운사는 사찰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한때는 130여 칸에 달하는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상운사는 북한산에서 3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는 아이를 못 낳는 분에게 아이를 낳게 해 주고, 영험있는 약사부처님이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 빼어난 주변 경관으로 인해 불자들뿐 아니라 많은 등산객이 즐겨찾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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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성암  상세보기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북한산(北漢山)에 있는 절.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曹溪寺)의 말사이다. 1713년(숙종 39)에 총섭승(摠攝僧) 성능(性能)이 창건하였다. 숙종 때의 북한산성 축성 당시 산성의 수호를 위한 승군(僧軍)을 거주하도록 하기 위해서 창건한 12개 절 중의 하나이며, 최초의 규모는 25칸이었다. 그 뒤 1860년(철종 11)에 중수하였는데, 보담(寶曇)이 쓴 상량문에 의하면 그 당시까지 상당히 많은 승려들이 머물렀고 많은 수의 신도를 가지고 있었던 절임을 알 수 있다. 그 뒤의 중건 및 변천에 관한 기록은 알 수 없으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창건주이자 북한산성 도총섭을 맡았던 성능의 사리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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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향교  상세보기
    조선 태조 7년(1398)에 건립된 지방교육기관으로 중 · 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1537년 중종의 계비인 장경왕후의 장지가 서삼릉으로 정해지자 향교는 대자동의 고읍마을로 이전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25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되었다. 건물 배치는 전학 후묘의 형태로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었다.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공자의 탄신을 맞아 석전대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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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산밤가시초가  상세보기
    조선 후기 서민의 삶이 깃든 초가집정발산 북동쪽에 자리한 약 170년 전에 건립된 조선 후기 중부지방의 전통 서민주택이다. 예전 이 마을은 밤나무가 울창해 밤가시 또는 율동이란 지명으로 불리었고 ‘밤가시초가’는 밤나무를 주요 생활용품과 건물의 재료로 사용한 것에서 불리게 된 이름이다. 안방, 부엌, 건넌방, 헛간이 ㅁ자형 구조로 배치되어 있다. 안마당 가운데 하늘구멍을 뚫어 놓았고 그 아래 마당을 한단 낮추어 비나 눈이 올 때 떨어지는 낙숫물이 밑의 단 바깥으로 벗어나지 않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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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강마을  상세보기
    가사문학의 대가 송강 정철을 따라서.......관동별곡, 사미인곡, 속미인곡, 성산별곡 등 한문이 주류를 이루던 때 국문으로 시를 지으며 가사문학을 꽃피웠던 송강 정철이 머물던 곳이다. 송강 정철이 부모의 상을 당하여 시묘를 했고 그가 살았던 흔적을 남기듯 그의 호를 딴 지명이 곳곳에 남아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시민들이 세운 송강 정철 시비가 있으며 송강고개, 송강보, 송강 낚시터 뿐만 아니라 송강 선생을 사랑했던 여인 강아의 묘와 송강문학관이 자리한다.